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한주간도 샬롬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성도는 어떻게 태어나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출애굽기 19장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감격, 즉 죽음에서 생명으로 ‘초대받았다’는 기쁨 속에만 머물러 있을 때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뜨거웠던 신앙이 시간이 지날수록 식어가고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단순히 위기에서 건져내어 응석을 받아주는 ‘응석받이’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진 ‘사명자’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표류인가, 항해인가?
아프리카의 산양 ‘스프링복’은
뒤에서 밀치니까 앞으로 뛰고, 남들이 뛰니까 이유도 모른 채 덩달아 질주하다가 결국 벼랑으로 떨어집니다.
혹시 우리의 삶이 이와 같지는 않습니까?
남들이 하니까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Monkey see, monkey do’ 식의 열심은
결국 탈진(Burnout)과 원망만 남길 뿐입니다.
아무리 거대한 항공모함이라도
엔진과 방향타가 없으면 바다 위를 떠도는 고철 덩어리로서 ‘표류’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2026년, 우리는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는 표류가 아니라, 사명이라는 엔진을 달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항해’를 해야 합니다.
나의 영적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설교를 통해 우리는 신앙의 여정을 네 단계로 확인했습니다.
- 애굽 (과거의 절망): 내 욕심과 세상 가치관에 얽매여 스스로 구원할 수 없었던 죄의 노예 상태였습니다.
- 홍해 (구원의 은혜): 나의 노력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독수리 날개)로 옛 자아가 죽고 새 생명을 얻은 ‘Free from(죄로부터의 해방)’의 현장입니다.
- 광야 (동행의 훈련): 하나님을 내 소원을 들어주는 ‘마술 램프의 지니’로 여기던 태도를 버리고, 오직 구름기둥과 불기둥만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훈련 학교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사명을 향한 자유(Free to)’를 배웁니다.
- 시내산 (교회와 사명): 그리고 우리는 시내산, 즉 ‘교회’에 당도합니다. 이곳은 위로만 받는 곳이 아니라, 운동선수가 경기 규칙을 배우듯 하나님 나라의 법도와 기준을 배워 ‘제사장 나라’로 거듭나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의 기쁨인 ‘봄’에만 취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뜨거운 뙤약볕을 견디며 말씀과 씨름하고 순종하는 ‘여름’의 수고를 지나야 비로소 삶의 현장에서 풍성한 ‘가을’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관상용 ‘꽃’이 아니라 세상을 살리는 ‘열매’로 부르셨습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이 서 있는 가정과 직장, 그 삶의 자리(가나안)에서 표류하지 않고 사명을 향해 항해하시길 바랍니다.
사탄이 좋아하는 삶이 아니라, 사탄이 두려워하는 말씀의 사람으로 살아내시길 축복합니다.
“우리는 표류하는 인생이 아닙니다. 사명을 가지고 항해하는 인생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