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 주간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는 묵상
01 고난주간 월요일
고난 주간 월요일의 묵상:
“열매 없는 종교를 심판하시는 주님”

고난 주간 월요일은 예수님께서 종교적 본질을 잃어버린 이스라엘과 그 지도자들을 행위로 심판하시고 선포하신 날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첫날,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성전을 뒤엎으셨습니다.
- 말씀 속으로 (행적 되돌아보기)
-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다 (마 21:18-22, 막 11:12-14, 20-24):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시장하셨습니다. 멀리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구하셨으나,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습니다. 이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비어있는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상징하는 강력한 시각적 심판이었습니다.
-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다 (마 21:12-17, 막 11:15-19, 눅 19:45-48):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뒤집으셨습니다. 주님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라고 꾸짖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죄 사함이 있는 성전이 사두개인들의 탐욕과 비즈니스 센터로 전락한 것에 대한 거룩한 분노였습니다.
- 깊은 묵상 (나에게 주시는 말씀)
- 나에게는 ‘잎사귀’만 있습니까, ‘열매’가 있습니까?
- 무화과나무처럼 나의 신앙은 종교적인 형식, 직분, 봉사라는 ‘잎사귀’만 무성하지 않은지 돌아보십시오. 주님이 내 삶에서 찾으시는 진짜 ‘열매(회개에 합당한 열매, 성령의 열매, 긍휼과 사랑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 나의 마음(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까, ‘강도의 소굴’입니까?
-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 성전은 오늘 주님과 깊이 교제하는 ‘기도’로 채워져 있습니까, 아니면 이 땅의 욕심, 근심, 세상적 비즈니스라는 ‘강도’들이 장악하고 있습니까?
- 주님의 거룩한 분노 앞에 나의 위선을 베어냅니까?
- 주님은 형식적인 종교인(바리새인)들을 가장 매섭게 꾸짖으셨습니다. 주님이 내 안의 거짓된 거룩함과 탐욕의 상을 뒤엎으실 때, 나는 그것을 회개로 주님 앞에 내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 고난 주간 월요일의 기도
사랑과 공의의 주님…
고난 주간 월요일에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주님의 발자취를 되돌아봅니다.
주님, 제 신앙의 잎사귀만 무성하고 주님이 찾으시는 열매가 없어 주님의 책망을 듣지는 않을지 두렵습니다.
이 시간 내 안에 있는 형식적인 종교 행위와 가식의 잎사귀들을 과감히 베어내고, 진정한 회개와 사랑의 열매가 맺히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제 마음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던 탐욕과 세상의 걱정들을 엎으시고
오직 주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와 찬양만이 울려 퍼지는 거룩한 곳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이 한 주간
제 삶이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참된 예배의 자리로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성경 읽기
- 마태복음 21장 (성전 청결, 무화과나무 저주)
- 마가복음 11장 (월요일 행적의 상세 기록)
- 누가복음 19:41-48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심, 성전 청결)
02 고난주간 화요일
고난 주간 화요일의 묵상:
“거짓을 꿰뚫으시고 참된 헌신을 가르치신 주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온갖 교묘한 질문(세금 논쟁, 부활 논쟁)을 던졌지만, 주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의 위선을 철저히 깨뜨리셨습니다. 그리고 겉치레뿐인 종교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전부를 드린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시며, 다가올 마지막 때를 위해 ‘깨어 준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 말씀 속으로 (행적 되돌아보기)
- 거짓된 위선자들과의 영적 전투 (마 21:23~23:39): 대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 번갈아 가며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올무를 놓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지혜로 그들의 입을 막으셨고, 회칠한 무덤 같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향해 “화 있을진저!”라며 무서운 7가지 심판(마 23장)을 선포하셨습니다.
-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막 12:41~44): 헌금함 앞에서 부자들이 거액을 넣으며 으스댈 때, 예수님의 시선은 두 렙돈(가장 작은 동전 두 닢)을 넣은 가난한 과부에게 머물렀습니다.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며, 액수가 아닌 ‘마음의 중심’을 드린 참된 헌신을 가장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 마지막 때를 위한 당부, 감람산 강화 (마 24~25장): 성전을 떠나 감람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 끝 날의 징조를 예언하십니다. 그리고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 제자들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신실하게 살아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 깊은 묵상 (나에게 주시는 말씀)
- 내 신앙은 ‘논쟁을 위한 지식’입니까, ‘순종을 위한 진리’입니까?
-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 지식이 많았지만, 그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쓰지 않고 남을 판단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무기로 썼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거울로 삼고 있습니까, 아니면 남을 정죄하는 잣대로 삼고 있습니까?
- 나는 하나님께 ‘쓰다 남은 것’을 드립니까, 아니면 ‘나의 전부’를 드립니까?
- 과부의 두 렙돈은 결코 가벼운 돈이 아니라 그녀의 생명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시간, 물질,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때 계산하고 재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겉치레가 아니라 상하고 깨어진 진실한 마음입니다.
- 나는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처녀처럼 ‘깨어’ 있습니까?
-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는 신랑을 기다리며 등불과 기름을 넉넉히 준비했던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나의 영혼은 세상의 은밀한 죄에 취해 잠들지 않고 깨어 기도하며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 고난 주간 화요일의 기도
진리와 지혜의 주님…
바리새인들의 끈질긴 공격과 올무 속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제 안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 자신을 포장하고 남을 판단하려는
바리새인의 교만이 숨어 있음을 고백합니다.
회칠한 무덤 같은 저의 위선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또한
부끄러운 손으로 자신의 전부를 드렸던 가난한 과부의 중심이 나의 중심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계산하는 신앙을 버리고
내 삶의 가장 귀한 것을 기쁨으로 올려드리는 참된 예배자가 되기 원합니다.
세상의 유혹에 영혼이 잠들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기도의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깨어 있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성경 읽기
- 마태복음 22장 (세금 논쟁, 부활 논쟁, 가장 큰 계명)
- 마태복음 23장 (바리새인들을 향한 칠화 선포)
- 마가복음 12:41-44 (과부의 헌금)
- 마태복음 25장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03 고난주간 수요일
고난 주간 수요일의 묵상:
“거룩한 낭비와 비극적인 배신이 교차하는 날”

수요일에는 상반된 두 사람의 ‘계산법’이 등장합니다. 한 여인(마리아)은 자신의 전 재산과도 같은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쏟아붓는 ‘거룩한 낭비’를 선택했습니다. 반면, 3년이나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 가룟 유다는 스승을 노예의 몸값인 ‘은 삼십’에 팔아넘기는 철저히 타산적인 ‘배신’을 선택했습니다.
- 말씀 속으로 (행적 되돌아보기)
- 베다니의 향유 옥합 사건 (마 26:6-13, 막 14:3-9):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인이 매우 값진 향유(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붓습니다. 제자들은 “왜 이것을 허비하느냐, 삼백 데나리온(노동자 1년 치 품삯)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라며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이라며 그녀의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라고 축복하셨습니다.
- 가룟 유다의 배신 (마 26:14-16, 막 14:10-11): 여인의 헌신이 비합리적인 ‘낭비’로 보였던 가룟 유다는 결국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갑니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그들은 노예 한 명의 값에 불과한 ‘은 삼십’을 달아 주었고, 유다는 그때부터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엿보기 시작합니다.
- 깊은 묵상 (나에게 주시는 말씀)
- 나에게 예수님은 ‘얼마짜리’ 가치입니까?
-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은 고작 은 삼십의 가치였지만,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전 재산, 아니 생명보다 더 귀한 분이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일에 유다처럼 세상적인 손익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마리아처럼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습니까?
- 내가 예수님의 발 앞에 깨뜨려야 할 ‘나의 옥합’은 무엇입니까?
- 옥합을 깨뜨린다는 것은 나의 가장 소중한 자랑, 미래의 보장, 혹은 끈질긴 자존심을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기 위해 내가 오늘 미련 없이 깨뜨려야 할 나의 옥합(시간, 물질, 고집)은 무엇인지 묵상해 보십시오.
- 침묵의 시간, 나는 십자가를 준비합니까, 세상을 계산합니까?
-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묵묵히 준비하시던 이 수요일의 침묵 속에서, 누군가는 사랑으로 장례를 준비했고 누군가는 탐욕으로 배신을 모의했습니다. 나의 멈춤과 침묵의 시간은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까?
- 고난 주간 수요일의 기도
나의 전부가 되시는 주님…
고난 주간 수요일…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순전한 헌신과 은 삼십에 스승을 판 유다의 배신을 함께 바라보며
제 안의 두 마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저도 때로는 제자들처럼 계산적인 신앙으로 주님께 드리는 시간과 물질을 아까워하며
‘허비’라고 여겼던 적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아낌없이 쏟아주신 그 크신 사랑 앞에
저의 얄팍한 계산기를 내려놓게 하여 주옵소서.
마리아처럼
제 삶의 가장 귀한 옥합을 기꺼이 깨뜨려
주님의 발 앞에 붓는 ‘거룩한 낭비’의 기쁨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유혹(은 삼십)에 주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제 영혼을 붙들어 주시고
온전한 사랑으로 십자가의 길을 따르게 하여 주옵소서.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성경 읽기
- 마태복음 26:1-16 (죽음의 모의, 향유를 부은 여인, 유다의 배신)
- 마가복음 14:1-11 (동일한 사건의 마가복음 기록)
- 요한복음 12:1-8 (유월절 엿새 전 베다니에서 있었던 일의 보충 기록)
04 고난주간 목요일
고난 주간 목요일의 묵상:
“끝까지 사랑하신 밤, 그리고 겟세마네의 피땀”

목요일 밤, 예수님은 창조주의 손으로 피조물인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는 ‘새 언약’의 만찬을 베푸신 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는 기도의 사투를 벌이셨습니다. 이 밤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끝없는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순종’이 완성된 밤입니다.
- 말씀 속으로 (행적 되돌아보기)
-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다 (요 13:1-17, 34-35): 유월절 전에 예수님은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 최후의 만찬과 새 언약 (마 26:26-29, 눅 22:14-20): 예수님은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 하셨고, 잔을 주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구약의 유월절 어린 양이 되셔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의 식탁 위에 아낌없이 내어주신 것입니다.
-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와 체포 (마 26:36-46, 눅 22:39-46): 만찬 후 감람산(겟세마네)으로 가신 예수님은 죽음의 고통 앞에서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여 주옵소서.” 세 번의 간절한 기도 끝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잔을 마시기로 결단하셨고, 곧이어 유다가 이끌고 온 무리에게 붙잡히셨습니다.
- 깊은 묵상 (나에게 주시는 말씀)
- 나는 형제의 더러운 발을 씻겨주는 ‘종’의 자리로 내려가고 있습니까?
-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무릎을 꿇고 배신할 제자(유다)의 발까지 씻기셨습니다. 나는 가정과 교회에서 대접받고 높아지려 합니까, 아니면 수건을 두르고 지체들의 허물과 아픔을 덮어주며 섬기고 있습니까?
- 성찬의 은혜: 주님의 십자가가 나의 유일한 생명임을 고백합니까?
- 주님이 찢으신 살과 흘리신 피만이 내 영혼을 살리는 참된 양식입니다. 나는 매일의 삶 속에서 내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갑니까, 아니면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만을 온전히 의지합니까?
- 나의 겟세마네는 어디입니까?
- 주님은 내 뜻(살고 싶은 육신의 본성)을 꺾고 아버지의 뜻(십자가의 죽음)에 순종하기 위해 피땀 흘려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나의 고집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치열하게 엎드려야 할 ‘겟세마네 기도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 고난 주간 목요일의 기도
사랑과 순종의 주님…
창조주의 거룩한 손으로 냄새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끝까지 사랑해 주신 그 크신 은혜 앞에 엎드립니다.
주님…
입으로는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높아지고 대접받으려 했던
저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주님처럼 수건을 두르고 이웃의 발을 씻기는 종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며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여 주옵소서”라고 순종하신 주님…
저의 삶에도 피하기 힘든 고난의 잔이 주어질 때, 불평하거나 회피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아버지의 뜻만이 내 삶에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치열한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를 위해 살과 피를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성경 읽기
- 요한복음 13장 (세족식과 새 계명)
- 누가복음 22:14-46 (최후의 만찬과 겟세마네의 기도)
- 마태복음 26:47-56 (예수님의 체포와 제자들의 도망)
05 고난주간 금요일
고난 주간 금요일의 묵상:
“다 이루신 십자가, 찢어진 휘장 그리고 완전한 구원”

금요일, 예수님은 불법적인 재판을 받으시고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신 주님은 양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6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끔찍한 죽음의 순간, 주님은 원망 대신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고, 그 순간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이 영원히 허물어졌습니다.
- 말씀 속으로 (행적 되돌아보기)
- 빌라도의 재판과 군병들의 조롱 (마 27:11-31, 눅 23:1-25):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께 죄가 없음을 알았으나, 군중의 폭동이 두려워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줍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께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며 침을 뱉고 갈대로 머리를 쳤습니다.
- 골고다의 십자가와 가상칠언 (눅 23:33-46, 요 19:17-30): 해골이라 불리는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온 땅에 어둠이 임하고, 주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며 철저한 영적 단절의 고통을 겪으신 후, 마침내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 선언하시고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
- 찢어진 휘장과 무덤에 묻히심 (마 27:50-61):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는 순간, 지성소를 가로막던 두꺼운 성전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누구나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저녁이 되자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허락을 받아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어 새 무덤에 안치했습니다.
- 깊은 묵상 (나에게 주시는 말씀)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누구입니까?
- 주님을 고소한 대제사장, 비겁한 빌라도, 망치를 든 로마 군인들을 비난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 주님을 매단 진짜 범인은 바로 ‘나의 죄’입니다. 나의 교만, 나의 탐욕, 나의 거짓됨이 예수님의 손과 발에 대못을 박았음을 철저히 뼈저리게 인정합니까?
- 나는 군중들처럼 ‘바라바’를 선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군중들은 생명의 주님을 버리고,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강도 ‘바라바’를 선택했습니다. 나는 나의 유익과 세상의 성공(바라바)을 얻기 위해, 내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타협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다 이루었다!” 찢어진 휘장 사이로 걸어 들어가고 있습니까?
- 주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죗값을 ‘완불(다 이루었다)’ 하셨습니다. 나는 아직도 내 행위나 공로로 구원받으려는 율법의 짐을 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찢어진 휘장 사이로 당당히 걸어 들어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은혜와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 고난 주간 금요일의 기도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신 나의 주님…
주님의 몸을 찢고 피를 쏟게 한 그 무서운 가시관과 대못이
바로 나의 더러운 죄악 때문임을 고백하며 통곡합니다.
죽어 마땅한 나를 살리시려고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피조물들의 조롱과 멸시를 묵묵히 견디시며 철저히 버림받으신
그 십자가의 사랑 앞에 엎드립니다.
주여…
“다 이루었다” 하신 그 위대한 선언이
내 영혼을 살리는 영원한 생명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나를 위해 찢어지신 그 휘장 사이로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감격을 매일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의 피로 값 주고 사신 나의 남은 인생…
이제는 내가 주를 위해 기꺼이 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게 하여 주옵소서.
나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성경 읽기
- 이사야 53장 (고난받는 종에 대한 구약의 완벽한 예언)
- 마태복음 27:11-54 (빌라도의 재판부터 십자가 죽음까지)
- 요한복음 19:17-30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다 이루심)
06 고난주간 토요일
고난 주간 토요일의 묵상:
“가장 깊은 침묵 속에서 부활을 준비하시는 주님”

금요일의 처절한 죽음과 주일의 영광스러운 부활 사이에 놓인 토요일은,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완벽한 절망과 단절의 시간입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숨었고, 대제사장들은 무덤을 굳게 봉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무덤의 짙은 침묵 속에서 온 우주를 새롭게 할 부활의 생명을 조용히 잉태하고 계셨습니다.
- 말씀 속으로 (행적 되돌아보기)
- 안식일에 무덤에 머무르심 (눅 23:56): 예수님은 금요일 해 질 녘에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안치되셨습니다. 창조 사역을 마치고 제7일에 안식하셨던 하나님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구원의 사역을 “다 이루시고” 이 안식일에 무덤 속에서 철저한 안식을 취하셨습니다.
- 무덤을 굳게 지키는 종교 지도자들 (마 27:62-66):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빌라도에게 찾아가 예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 갈까 두렵다며 무덤을 지켜달라고 요구합니다. 빌라도의 허락을 받은 그들은 돌문 인봉(총독의 도장)을 찍고 경비병들을 세워 생명의 주를 죽음 속에 영원히 가두려 했습니다.
- 숨죽여 기다리는 제자들과 여인들: 향품을 준비했던 여인들은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며 슬픔 속에 엎드려 있었고, 제자들은 스승을 잃은 절망과 유대인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문을 걸어 잠근 채 숨죽여야만 했습니다.
- 깊은 묵상 (나에게 주시는 말씀)
- 내 삶의 ‘토요일(침묵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있습니까?
- 고난(금요일)은 지나갔지만, 아직 응답(주일)은 오지 않은 응답의 유보 상태.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마치 무덤 속에 계신 것처럼 완벽히 침묵하시는 것 같은 내 삶의 ‘토요일’에, 나는 절망하고 포기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며 잠잠히 기다립니까?
- 세상의 봉인과 경비병이 하나님의 능력을 막을 수 있습니까?
- 세상은 총독의 권력(인봉)과 무력(경비병)으로 거대한 돌문을 닫아 예수님을 영원히 죽음 안에 가두려 했습니다. 지금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절망의 돌문과 세상의 위협이 과연 부활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막아설 수 있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 하나님의 침묵은 ‘부재(不在)’가 아니라 ‘준비’입니다.
- 무덤 속의 토요일은 결코 실패로 끝난 정지 화면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아침을 열기 위해 가장 어두운 곳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내 삶에 임한 하나님의 침묵 역시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더 큰 은혜를 준비하시는 과정임을 믿으십니까?
- 고난 주간 토요일의 기도
침묵 속에서도 일하시는 신실하신 주님…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차가운 돌무덤 앞, 고난 주간 토요일의 깊은 침묵 속에 머물러 봅니다.
주님…
저희는 고난이 닥칠 때마다 조급해하며
주님이 침묵하실 때면 마치 저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신 것 같아
두려워하고 절망했음을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지나 무덤에서 안식하신 주님…
내 삶의 캄캄한 토요일을 지날 때에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세상이 굳게 닫아버린 절망의 돌문 뒤에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부활의 생명을 잉태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굳게 신뢰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곧 밝아올 영광스러운 부활의 아침을 소망하며, 흔들림 없는 믿음의 자리를 지켜내게 하여 주옵소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성경 읽기
- 마태복음 27:62-66 (경비병들이 무덤을 지키다)
- 누가복음 23:50-56 (무덤에 묻히심과 안식일의 기다림)
- 예레미야 애가 3:24-26 (여호와의 구원을 잠잠히 바라는 믿음)
07 부활주일
부활주일의 묵상:
“사망 권세를 깨뜨린 빈 무덤, 그리고 영원한 산 소망”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 여인들이 향품을 들고 찾아간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무덤을 막았던 육중한 돌문은 굴려졌고, 죽음을 상징하던 세마포는 단정히 개켜져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천사의 이 위대한 선포는 인류의 모든 절망을 끊어내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는 가장 강력한 복음의 나팔 소리입니다.
- 말씀 속으로 (행적 되돌아보기)
- 돌문이 굴려진 빈 무덤과 천사의 선포 (마 28:1-7, 눅 24:1-12):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이 슬픔을 안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을 때,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내려와 돌을 굴려 내었습니다. 천사는 두려워하는 여인들에게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최초로 전해주었습니다.
-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요 20:11-23): 빈 무덤 밖에서 울고 있던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찾아와 그녀의 이름을 다정히 부르셨습니다(“마리아야”). 또한,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굳게 닫고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친히 나타나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며, 못 박히신 손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를 보여주심으로 부활의 참된 증거를 나타내셨습니다.
- 깊은 묵상 (나에게 주시는 말씀)
- 나의 신앙은 ‘금요일의 슬픔’에 머물러 있습니까, ‘주일의 생명’으로 약동합니까?
- 십자가의 죽음이 구원의 완성이라면, 부활은 그 구원이 진짜임을 증명하는 영수증과 같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으신 ‘과거의 위인’으로만 모시고 있습니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삶의 모든 절망의 돌문을 굴려내시고 살아서 역사하시는 ‘부활의 주님’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세상)’ 가운데서 찾고 있습니까?
- 여인들은 살아나신 주님을 죽음의 무덤 속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나는 영원한 생명과 참된 기쁨을 썩어 없어질 이 세상의 돈, 명예, 사람들의 인정이라는 ‘죽은 무덤’ 속에서 애타게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 두려움의 문을 열고 ‘부활의 증인’으로 나서고 있습니까?
-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증인으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나 역시 부활의 생명을 소유한 자로서, 가정과 일터에서 십자가의 사랑과 생명을 거침없이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 부활주일의 기도
생명과 부활의 주님…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사
우리에게 영원한 산 소망이 되어 주시니 그 크신 영광과 승리를 찬양합니다!
주님…
그동안 저는 십자가의 은혜를 안다고 하면서도
작은 삶의 고난과 위기 앞에서는 마치 무덤에 갇힌 자처럼 두려워하고 절망하며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굳게 닫힌 제 영혼의 돌문을 부활의 권세로 굴려 주옵소서.
빈 무덤을 향해 달려갔던 제자들처럼
이제는 죽음도 가난도 질병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하게 하여 주옵소서.
닫힌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아가
살아 계신 나의 주님을 온 삶으로 증명하는 거룩한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부활이요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성경 읽기
- 마태복음 28장 (빈 무덤과 지상 대명령)
- 요한복음 20장 (마리아와 제자들, 도마에게 나타나심)
- 고린도전서 15장 (위대한 ‘부활장’: 부활의 확실성과 영광스러운 변화)
